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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K.O.T.H. 30주년을 맞는 나의 음악생활 30년 돌아보기

by LarsUlrich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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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4년은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였습니다.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 면단위에서, 시내로 들어가던 시기였죠. 

 

그보다 더 오래 전인 국민학교 시절, 형들이 더빙으로 가져온 테이프에서 많은 외국의 락/메탈 음악을 일찌감치 접하기 시작해서, 중학생 때까지 어느 정도는 형들의 발자취를 따라갔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용돈이랄 게 없던 국민학생, 중학생 시절에는 나만의 카세트 플레이어나, 테이프를 구입할 능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on Jovi, Dio, Helloween, Judas Priest, Poison, Stryper, Cinderella, Def Leppard, Queen 같은 그룹들을 형들의 도움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94년은 제게 Helloween의 'Chameleon' 앨범이 크게 와닿았을 시절입니다. 발매일 상으로라면 'Master of the rings' 앨범을 최신 앨범으로 접하며 들었어야겠지만, 제 기억이 오래되어서 인지, 시골 음반가게에는 아직 들어오질 않아서인지, 당시에는 바로 접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이 외국의 여러 장르의 음악에 대해 모두 열린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매일 상으로 더 오래된 앨범들이 더 나중에 발매되거나 하는 등의 혼돈(?)도 존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Keeper...' I/II 앨범을 다 듣고 나서야 'Walls of Jericho'  앨범을 사 듣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따라서 저와 같은 락/메탈 입문자들에게 앨범의 순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밴드의 변화, 혹은 다른 앨범을 접한다는 것은 곧 새로움, 신선함으로 다가오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Keeper of the seven keys' 시리즈 앨범 두 개와, 영국 공연 앨범 'Live in the U.K.'의 인상이 매우 강렬하게 남았던 터라, 후속 앨범인 'Pink bubbles  go ape'와, 'Chameleon'에 대한 인상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Live in the U.K.'에서 시작하여 'Chameleon'까지, 여기서 느꼈던 더 풍성하고 따뜻한 음색이 드러난 음반, 즉 EMI로 레이블을 옮기고 발매된 세 개의 음반이 저는 모두 좋았습니다. 대중적인 성향에서 벗어난 상업적인 실패가 제게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Helloween의 음악이었고, 나는 그들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밴드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Metallica가 'Black' 앨범 이후 'Load', 'Reload' 앨범에서 얼터너티브 스타일의 변화를 꾀했을 때 맞이한 혹평과 비슷한 면이 있죠.)

 

그러다 1995년에 'Master of the rings' 앨범을 듣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벗어나 고향집을 오가던 주말 버스 안에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1996년에 'The time of the oath' 앨범을 들었을 때는 완전히 푹 빠져 버렸습니다. 고3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오랫동안 재생된 앨범이었습니다. 

 

1998년에 발매된 'Better than raw' 앨범은 발매일 당시에는 접하지 못했습니다. 1999년도에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한동안 신병생활을 하게 되었고, 두 달 선임이던 이가 다행히 음악적 취향이 비슷해서 휴가를 나갔다 오며 사 들고 온 'Better than raw' 앨범을 군대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죠. 아마 상병이나 되었을 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휴가를 나가서 직접 사 듣게 된 'The dark ride'까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인 군대에서, 겨우 짬이 차고 나서야 군생활의 작은 위안이 되어 준 두 앨범이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까지... 오랫동안 나의 음악은 락/메탈이 중심이었습니다. 그것도 Helloween/Gammaray, Metallica를 중심으로 한 파생/유사 밴드의 아주 좁은 장르적 특성만을 좋아했습니다. TV/라디오에서 가요를 접할 수 있었지만 가요 앨범을 사거나 한 적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었습니다. 

 

취업 후 독립하여 살면서 찾아온 외로움은 사람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나랑 같은 음악적 취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던 시점에서 나의 최애 밴드가 Helloween이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 같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Metallica의 광팬이기도 했고, 실제로 나의 인터넷상의 모든 아이디/닉네임은 Metallica와 관련된 단어로 되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Metallica 팬클럽에 들어가서 활동했다면, K.O.T.H. 나 그 회원들과의 교류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Metallica 팬클럽에서도 어떤 인연이든 생길 수 있었겠지만요.

 

나만의 소득을 갖게 된 다음부터, Helloween의 앨범들은 발매할 때마다 곧바로 사 들을 수 있었고, 듣는 방법도 더 나아졌습니다. 테이프가 아닌 CD를 사고, MP3 플레이어도 사고, PC에서 듣기도 하고, 홈씨어터를 통해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환경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음에도 Helloween의 음악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Rabbit don't come easy', 'Keeper of the seven keys - the legacy', 'Gambling with the devil' 앨범은 사놓고도 안 듣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특히 'Keeper of the seven keys - the legacy' 앨범은 다른 앨범보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음악적 취향이 변해서였을까요? 

 

직장을 다니며 도시에서 혼자 살던 시기에, 나는 대도시를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삶은 막막했으며, 특히 사방에 콘크리트 건물 투성이인 도시의 답답함이 싫었습니다. 2009년도에 부천 구도심에서 대전의 변두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하고 한 1년 반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쉬었습니다. 좋아하던 영화, 야구도 실컷 보고, 변두리 도시의 한적함을 만끽하고 살았습니다.

 

나의 삶에 락/메탈의 지분이 줄어들고, 가요와 발라드의 영역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답답하고 꽉 막힌 도시에서의 반복적인 삶에서 벗어나서였을까요? Helloween의 새 앨범이 한동안 나오지 않던 시기여서였을까요? 많은 국내 가수들의 앨범을 사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30대 초반을 갓 맞이한 상태였지만,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 때문인지 와닿는 노래들이 참 많았고, 그 시절의 내 감성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2010년도에 '7 Sinners'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전작인 'Gambling the the devil'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내 음악적 취향이 락/메탈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훗날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들었을 때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앨범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팬으로서 홀대한 앨범들에 미안한 마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앨범들, 'Straight out of hell', 'My God given right', 'Helloween' 까지도 여전히 나의 귀에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CD 장식장에 진열된 앨범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때 느낀 것은, Helloween이라는 밴드 역시 노쇠해가고 있고, 나 역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대전에서 쉬는 동안 내 인생의 다음 순간에 대해 결심해야 했습니다. 30대 중반이 지나기 전에 취업과 연애/결혼, 둘 중에 하나라도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살아야겠다는 다소 허황된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쳐져 있는 육체의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근처 초등학교에서 한 시간씩 뜀박질을 하고,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다행히 2011년 말에 취직이 되어 5년 정도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동기를 부여받고 활력을 되찾은 나는 다시 바깥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동호회 활동도 하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얻었습니다. 대전으로 내려오며 한동안 멀리했던 K.O.T.H. 의 정기모임에도 가끔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다른 동호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영미권 팝과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아내를 만나서 나의 음악적 취향과 영역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함께 가기 위해, 생전 듣지 않았던 노래들을 듣고, 가사를 외웠습니다. 처음엔 반 장난식으로 시작했지만, 함께 할수록 더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돌 노래도 함께 들으며 따라 부르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사람, 물건, 음악, 그 무엇이든...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실제로 겪기 전까지는 실상을 알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이성이 그렇습니다. 

 

나는 10대가 되기 전 일찌감치 락/메탈을 접하고 한동안 그것에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20대를 거치며 나의 젊음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에, 락/메탈 음악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30대를 거치며 가요와 발라드 음악에 눈을 뜨고, 40대를 거치며 (비록 일부지만) 아이돌의 음악까지 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나의 10, 20대가 편협하거나 배타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나의 감성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아직도 접해보지 못한 많은 장르의 음악들이 많지만, 욕심은 없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올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음악의 창작,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감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가수, 밴드들의 전성기가 비교적 젊은 시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성, 열정, 에너지... 같은 것들이 마음껏 발산됐을 때의 결과물이,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대체로 훌륭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평생 지속되지는 못합니다. 매번 같은 형태의 음악을 하고, 비슷한 곡들만 내놓는다면 그 곡들이 좋은 평을 받을까요? 자기 복제라는 혹평을 듣기 딱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 곡들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팬을 만족시킬 수 있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곡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나는 K.O.T.H.의 시작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중간에 합류하여 어느덧 3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합류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락/메탈은 주류 장르도 아니고, 10대, 20대의 열정과 에너지를 대변하는 음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고, 나도 변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Helloween이라는 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해 준, K.O.T.H. 회원들, 그리고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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