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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24/12/24 영화: 하얼빈 관람 후기

by LarsUlrich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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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터미널 백화점의 주인이 신세계에서 롯데로, CGV가 롯데 시네마로 바뀌고 나서 처음 가 보았습니다. 고속버스를 탈 일이 없으니 터미널에 가지 않고, 쇼핑은 주로 인터넷이나 집 주변의 마트에서 하다 보니 백화점에 갈 일도 딱히 없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곧바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예매해 둔 좌석이 있어서 상영시간 전까지 우선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당가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서 정말 불경기가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먹는 건 사람이면 누구든 하는 일이기에 백화점 푸드코트가 잘 되는 게 별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무심코 보면 너무나도 평온한 일상처럼 보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모여 쇼핑을 하고,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하얼빈은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며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즉 일제 조선총독부의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사건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내내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진행되고,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독립의 역사를 되새김합니다.

 

극 중 안중근 의사의 인간의 근본에 대한 믿음이 몇 차례 드러납니다. 안중근 의사가 보여준 일제 장교에 대한 인간적 온정은 배신으로 돌아왔고, 일제에 체포되어 밀정이 되어 돌아온 동지 김상현에 대한 포용과 온정은 신뢰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비록 잠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대한의군의 다른 동지들로부터 안중근 본인도 부여받았기에, 안중근 역시 본인의 신념에 따라 밀정으로 확인된 동지에게도 부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지는 안중근의 사후에 동료를 배신하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일제 장교를 처단한 것이고요.

 

영화 속에서 극적인, 혹은 잔인한 장면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영화적으로 일제 치하의 조선(혹은 대한제국)과 국민들의 참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선악구도의 대비를 선명하게 하고,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할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다소 차분한 방식으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합니다.

 

다른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 살고 있으니 살아남은 자들은 그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유지를 받들라. 올해가 안 되면 내년에, 혹은 그 후에라도 행동할 것이다. 독립이 될까? 나 하나 희생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누가 우리를 기억해 줄까? 끊임없이 이러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말일 것입니다. 신념을 갖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토히로부미는 마치 일제가 조선(대한제국)에 은혜라도 베푼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언어, 문화 말살을 시도하였고, 수많은 자원들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당시 일제에 의해 건설된 기반 시설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결코 우리나라,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황석영 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도둑놈이 우리 집 담에 사다리를 쳐서 물건을 도둑질해 갔는데, 그 사다리를 두고 갔다는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지 않았으면 근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 우리 민족을 무능력한 것으로 폄하하는 일제의 논리일 뿐입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국가에 큰 변이 생겼을 때마다 단합하여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그러하였고, 독재자들이 야욕을 드러내며 국민을 탄압할 때마다 저항하였습니다. IMF 위기를 극복하였고,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도 그러하였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국민들이 일제에 대항하여 싸워 결국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광복의 표면적 계기는 일제가 미국에 의해 패망한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정신이 30년이 넘는 일제의 억압하에서도 굴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영화가 바로 하얼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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